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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부여(1)

by 이촌산인 2017. 10. 17.

 

★ 夫餘在長城之北(부여재장성지북) 去玄菟千里(거현토천리) 南與高句麗(남여고구려) 東與挹婁(동여읍루) 西與鮮卑接(서여선비접)  北有弱水(북유약수) 方可二千里(방가이천리) 戶八萬(호팔만) 其民土著(기민토착), 有宮室倉庫牢獄(유궁실창고뇌옥) 多山陵廣澤(다산릉광택) 於東夷之域最平敞(어동이지역최평창) 土地宜五穀(토지의오곡) 不生五果(불생오과) 其人麤大(기인추대) 性彊勇謹厚(성강용근후) 不寇鈔(불구초) 國有君王(국유군왕) 皆以六畜名官(개이육축명관) 有馬加牛加豬加狗加使使者使者(유마가우가저가구가대사대사자사자) 邑落有豪民(읍락유호민) 下戶皆爲奴僕(명하호개위노복) 諸加別主四出道(제가별주사출도) 大者主數千家(대자주수천가) 小者數百家(소자수백가)

cf. 『魏書』 30 「東夷傳」 <夫餘>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에서 천리쯤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와 동쪽은 읍루와 서쪽은 선비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사방 2천 리가 되며, 호수는 8만이다. 그 백성은 토착 생활을 하며, 궁실과 창고 및 감옥을 가지고 있다. 산릉과 광택이 많아서 동이에서는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오곡이 자라기에는 적당하지만,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외모는 거칠어 보이나 성질은 강용근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 노략질하지는 않는다. 나라에는 군왕이 있고, 모두 육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정한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등이 그것이다. 부락에는 호민이 있으며, 하호는 모두 노복이다. 제가는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는데, 큰 곳은 수천 가, 작은 곳은 수백 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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