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삶과 출생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여러 고대 문헌들을 종합해 볼 때, 그는 대략 기원전 1500년에서 1300년 사이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조로아스터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란 동부 혹은 중앙아시아라는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다.
★ 조로아스터는 그리스식 이름이다. 고대 페르시아어인 아베스타어로는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라고 불린다. 이 이름은 '낙타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는 낙타를 잘 다루는 사람이 존경을 받았던 유목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 조로아스터는 40세까지 여러 지역에서 설교를 했지만, 10년 동안 그를 믿고 따른 사람은 그의 사촌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포교 활동을 하던 당시 페르시아 사회는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르치는 유일신 개념이나 정의와 진리에 대한 내용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그는 끊임없이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전파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조로아스터는 그의 민족에게 거부당한 뒤 선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에서 조로아스터는 포교의 대전환을 맞는다. 이란 동부 박트리아의 전설적인 왕 비스타스파(Vistaspa)가 개종하면서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비스타스파 왕은 다신교, 다민족 사회의 분열된 상태보다 조로아스터교라는 새로운 유일신 종교가 나라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cf. 유흥태, 『페르시아의 종교』, 살림출판사
★ 조로아스트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삶과 그의 출생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문헌에 나타난 단편적 언급과 언어학적 증거를 고려할 때, 그의 출생에 관해서는 기원전 15세기 경과 기원전 7세기 경의 두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출생지에 대해서도 이란 북서부 우루미예(Urumieh)와 이란 동부 박트리아(현재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두 설이 맞서 있다. 이 중 후자의 설이 더 신빙성 있다.
cf. 유흥태, 『에스파한 - 제국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는 이란의 진주』, 살림출판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