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얼기설기'란 어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얼'의 어휘 의미가 오늘날 크게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얼이란 나사가 몇 개 정도는 빠진 정신이란 게 그분 말씀의 요지였다. 그러므로 '민족의 얼' 대신 '민족의 알'이 사리에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스치듯 지나가는 '얼기설기'란 어휘를 얼른 잡아채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전을 찾던 중 얼기설기의 큰말에 '알기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기살기'와 '얼기설기'는 모음조화의 대립적 양상을 보여주는 어휘다. 전자가 양성모음이라면, 후자는 음성모음 어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얼기설기'에는 다음 세 가지 뜻이 있다.
A. 가는 것이 이리저리 뒤섞이어 있는 모양
B. 엉성하고 조잡한 모양
C. 관계나 일, 감정 따위가 복잡하게 얽힌 모양
얼기설기는 다음과 같이 형태 분석된다.
얼기설기 = 얽 + 이 + 섥 + 이
여기서 '얽'은 '얽다'의 어간이며, '이'는 부사형 어미가 된다. 그렇다면 '섥'은 '섥다'의 어간이 될 법한데, 현존 국어사 자료에는 이 어휘가 발견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질의 응답> 항목에서는 이를 "자음과 모음을 약간씩 달리하여 상징어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만들어진 '순전히 조어론적인 말"로 본다. 곧 'ㅇ'과 대응하는 'ㅅ'을 임의로 집어넣어 '얼기설기'란 조어론적 어휘를 만든 것으로 본다. '섥다'의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 설명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경우 '얼기설기'는 '얽다'에서 나온 파생어가 된다. 문제를 보다 꼼꼼이 따지기 위해서는 '얽다'의 어원으로까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얽다의 어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말에 있어서 동사 어간에 쌍자음이 달린 어휘는 종종 재미있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맑다'나 '묽다' 같은 어휘가 그것이다. '맑다'나 '묽다'의 어원을 찾는 일은 '얼기설기'의 비밀을 푸는 데 있어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연히 중고 서점에서 향가 연구자로 알려진 이탁 선생의 친필이 기록된 그분의 저서 정음사 간행 『국어학논고』란 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책을 뒤적이던 중 「어학적으로 고찰한 우리 시가 원론」이란 논문에 눈길이 끌렸다. 거기에는 국어 어휘에 대한 흥미로운 발상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예를 들면 '風流풍류'를 한자가 아닌 차자로 보고, 그것을 노래를 뜻하는 '불'로 읽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채택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A. 虞風縣本于火縣우풍현본우화현 cf. 삼국사기 지리지 1
우풍현은 본래 우화현이다.
B. 今太行之西 汾晉之間금태행지서분진지간
讀風如分 猶存古音 독풍여분유존고음 cf. 毛詩古音考모시고음고
지금도 태행산맥 서쪽 분과 진 사이에서는 풍을 분이라고 읽는데, 그것은 여전히 고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cf. 毛詩古音考모시고음고 : 명나라 陳第진제 편찬의 음운서
C. 南坡金君伯涵 남파김군백함 以善歌鳴一國이선가명일국 … 卽自製新飜즉자제신번 畀里港人習之비이항인습지 cf. 청구영언
남파 김천택은 노래를 잘 불러 나라에 이름을 떨쳤다. 자신이 직접 새 노래를 지어 일반인들로 하여금 익히게 했다.
여기서 '풍 = 화 = 분 = 번'의 공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풍류는 노래를 뜻하는 어휘가 된다. 이때 풍류의 '流류'는 말음첨기로서 불의 종성 'ㄹ'을 반영한다고 한다. 말음첨기는 구름을 '雲音운음', 가을을 '秋察추찰' 등으로 표기하는 향찰 차자법의 중요한 원리다. 이렇게 볼 때 '노래를 부르다'의 '부르다'는 '바람이 불다'의 '불다'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은 시가의 기원을 밝히는 데 있어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탁 선생은 '맑다'의 어원을 '물'에서 찾는다. '맑'에서 물을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이때 'ㄱ'이 파생어 형성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그것은 '~게 하다'와 같은 사동의 기능을 가진 어사를 압축해 'ㄱ'으로 표시한 것은 아닐까? '묽다' 역시 물에서 나온 어휘로 보이는데, 그것은 '물이 되게 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맑다 또한 '물이 되게 한' 상태를 가리킨다. 다만 양성모음 맑다가 음성모음 묽다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맑다: 긍정적
↗
물
↘
묽다: 부정적
그러나 'ㄱ'에 대한 주장은 하나의 추론에 불과하다. 오히려 반대로 '맑다'나 '묽다'에서 물이란 어휘가 파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이러한 의문은 남겨둔 채 다시 알기살기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얽다'의 어원은 무엇일까? '맑다'나 '묽다'의 예를 고려하면, 그것은 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일 수 있다는 상황을 염두에 둔 채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얼의 어휘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얼빠지다'와 관련 깊은 어휘인 것처럼 보인다. '얼빠지다'는 얼이 빠진 것인가, 아니면 얼에 빠진 것인가? 전자라면 얼은 기존의 해석대로 정신을 가리키는 어휘가 된다. 반면 후자라면 얼은 나사가 몇 개 정도 빠진 정신이 된다. 얼의 큰말 알의 존재를 고려하면, '얼빠지다'는 얼에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알의 어휘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 알은 강길운 선생의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에 따르면, ‘낟알'을 뜻하는 드라비다 곤드방언Dr-malayalam 'ari'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곧 *ari > al로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본다. 다만 '卵난'을 뜻하는 알은 드라비다 말라아람방언Dr-gondi 'ērg'와 비교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ērg > әr> ar의 변화를 겪는다. 이렇게 볼 경우, '알'은 '낟알'이나 '난'과 같은 구상명사에서 정신과 같은 추상명사로 그 의미가 확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금을 뜻하는 알타이 공통 기어 *alta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자. 금은 고대 터키어로는 altu:n이며, 몽골 문어로는 alta가 된다. 그것은 *alta >alti > alči로의 어형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金閼智김알지는 같은 의미의 두 어휘를 겹쳐 쓴 이른바 동의 첩어에 해당한다. 아마도 알을 뜻하는 al에 ta라는 접미사가 붙어 금이라는 파생어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때 알은 핵심이란 의미를 가진 어휘로 전화된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말 '알짜'가 그것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곧 알짜 같은 물건이 금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al + ta = alta
명사 + 접미사 = 파생 명사
알 + 짜 = 알짜
알은 낟알, 난, 알짜 또는 정신 등의 의미를 갖는다. 알과의 대립을 염두에 둘 때, 얼은 그러한 특징이 퇴색된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독립된 개체로서의 속성이 사라지거나, 또는 알짜가 되는 핵심 요소에 흠결이 생기는 경우가 그것이다. 얼의 어휘 의미를 이렇게 파악한다면, '얽다'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되는가? '얽다'는 앞서 설명한 'ㄱ'의 기능을 고려한다면, 얼의 상태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얽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다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A. 얼굴에 우묵우묵한 마맛자국이 생기다.
물건의 거죽에 우묵우묵한 흠이 많이 나다.
B. (…을) 노끈이나 줄 따위로 이리저리 걸다.
(…을 …으로) 이리저리 관련이 되게 하다.
얼굴이나 물건에 마맛자국이나 흠이 생긴 것은 핵심 요소에 흠결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이러저리 관련이 된 것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속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얽'에 부사형 어미 '이'를 붙인 '얽이'는 무슨 뜻을 가지는가? 앞서 소개한 '얼기설기'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에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A. 가는 것이 이리저리 뒤섞이어 있는 모양
B. 엉성하고 조잡한 모양
C. 관계나 일, 감정 따위가 복잡하게 얽힌 모양
문제는 '얼기설기'의 '설기'가 국립국어원의 설명처럼 임의로 만든 조어의 일종인가에 있다. 이것은 장을 달리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리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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